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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작가와의 인터뷰

zenny 2019. 2. 12. 03:45

렛미인 작가와의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씨.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타이핑하고 있자니 어쩐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한국말로 당신의 이름을 발음하면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이 나거든요. 지금 이곳 서울은 새벽 두시를 조금 넘겼습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라케베리가 스톡홀름 근교라고 보면 당신의 이야기는 지금 오후 일곱 시를 조금 넘겼겠군요. 

우선 간만에 오감을 충족하는, 아주 새롭고, 아주 매혹적인 소설을 만나게 되어서 매우 좋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떤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당신의 소설 때문에 잠자는 시간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워낙 매력적이고 조금은 가슴 아픈, 이 애틋한 소설을 위해 당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 보다는 편지를 쓰는 기분을 내고 싶었습니다. 

밤은 깊었고, 어쩐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니 양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편의를 위해, 각 질문들에는 번호를 붙이겠습니다. 

별로 그러고 싶은 기분은 아니지만요. 아,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스미스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게 되더군요.“Because if it's not the love than it's the bomb, the bomb, the bomb-” (만일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 폭탄, 폭탄, 폭탄일 거야.) 

이런 가사라든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다)라든가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 (지난 밤 누군가 날 사랑해주는 꿈을 꾸었어) 같은 노래들... 음, 대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1. 연장선상에 있는 질문 같군요. 당신의 매력적인 ‘첫’ 소설 <렛 미 인>의 영어 제목은 모리시(Morrissey)의 노래 ‘진정한 사랑을 마음속에 들이세요 (Let the Right One Slip In)’에서 따왔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의 첫 장에는 ’최후의 저명한 국제적 플레이보이 (The Last Of The Famous International Playboys)‘가 인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사실 나는 모리시 자체보다는 스미스(The Smiths)의 팬인데요, 우선 그의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혹은 그들)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은 무엇인지도 알고 싶군요.

저 또한 모리시와 스미스의 열혈 팬입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저의 작품들 다수에 모리시의 가사를 꽤 많이 인용했죠. <렛 미 인>을 이루는 여러 갈래 중에서 한 갈래가 자신의 삶에 누군가를 ‘들이는(let in)'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또 모든 종류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적절한 제목입니다. 또 소설의 기조와 배경, 다루어지는 문제들이 상당히 ’모리시적(Morrissey-esque)‘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리시의) 음악은 <I Have Forgiven Jesus>입니다. 

2. 마술사, 스탠드업 코미디언, 방송 작가 등 독특한 경력을 지녔습니다. 당신이 작가가 되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것은 언제, 어떤 이유에서였습니까? 방송 작가로 지내다가 소설로 선회하게 된 이유도 궁금하네요.

저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게, 말씀하신 제 모든 이력이 결국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심지어 마술의 경우도 속임수를 쓰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다 글로 써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렛 미 인>을 쓰기 전에 적어도 십 년 정도는 산문 습작을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이 수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건 호러 장르에 매료되면서부터였어요. 그전에는 '작가'가 되고자 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한 소년이 뱀파이어를 만나는 이야기를 실제로 쓴 것이라고 할까요. 

3. 소설의 배경이 되는 ‘블라케베리’는 당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소멸하고 있는, 고요하고 생기 없는 교외지역의 전형이기도 한 것 같군요. 이곳을 배경 삼아 당신의 이야기를 진행한 숨겨진 이유, 혹은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데 도움이 된 점이 있다면요?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곳에 대해 쓰는 게 훨씬 더 쉽다는 이유였을 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에 지금도 오스카르라는 아이가 살고 있어요. 그곳이라면 골목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 있어요. 또 하나,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하면서 내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확실한 바탕을 깔아줄 수 있었어요. 

4. 책을 읽다보면 1980년대 초 스웨덴의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이 어떤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우 불안정한 사회적 현실이 이야기 속에 많이 개입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80년대 초라면 소위 말해지는 스웨덴식 사민주의, 그 이상적인 이념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 차츰 드러나는 시점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1934년 처음 준공되었을 때 국가의 자랑거리처럼 여겨졌던 트라네베리 다리는 1960년대부터 하중을 버텨지 못하게 되었고, 1981년 11월에도 역시나 지친 상태로 묘사됩니다. 이후 ‘시에른’이라는 다리가 건축된다는 국왕의 선언이 있는 것처럼 어떤 가치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는 상황 같기도 한데요. 이런 광경이 낯선 한국독자들을 위해 당시의 특유한 분위기나 개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미안한데, 질문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아요. 1980년대 스웨덴의 초상을 그린다는 건 제 의도와는 전혀 무관해요. 제가 그 당시 오스카르와 동갑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정하게 된 겁니다. 

5. 소설에도 다음과 같은 부분이 등장하긴 하는데, 엘리(Eli)라는 이름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에서 따왔을지 모르겠다고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사실일까요?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엘리는 물론 히브리어로 ‘하느님’을 의미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정작 나중에 가서였어요. 뱀파이어 소년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냥 엘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사실 ‘니모’나 ‘이노’처럼 엘리도 아무 뜻이 없는 이름이에요. 내내 별 생각이 없다가 스타판이 종교적인 의미와 연관 지으면서 저도 비로소 떠올린 겁니다.  

6. 소설에서 감추어진 엘리의 과거, 그러니까 2백 년 전의 엘리가 겪은 일들에 대해서 묻고 싶군요. 그 상처에는 실재하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건가요? 어쩐지, 그냥 그런 일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단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위해 그 내용을 삽입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서요.

저는 제 작품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 글은 언제나 이미지에서 출발해요. 캐릭터도 없고, 심지어 이렇다 할 스토리도 없이 시작되죠.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있고 그 이미지들 간에 다리를 연결하고 길을 낸 다음 그 길을 걷게 될 캐릭터들을 떠올리고, 그러고나서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겁니다. 귀족이 엘리를 거세하는 광경도 그런 이미지들 중의 하나였어요. 그 이미지가 뜻하는 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선 모릅니다. 


7. 시련을 겪었지만 거세를 당했지만 엘리는 본디 이름이 ‘엘리아스’고, 남자 아이‘였’습니다. 실제로 영화가 먼저 알려진 한국에서는 <렛 미 인>이 퀴어 코드로 보다 빨리 이름을 알렸다고 할 수도 있겠고요. 사실 ‘엘리’는 뱀파이어가 된 운명, 흡혈하는 어린아이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소외된 소수자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굳이 남자아이로 설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까요? (덕분에 보다 고결한 로맨스가 완성되었다고 보지만요.)

자꾸 같은 대답만 해서 죄송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 역시 제가 이 이야기를 반 정도 썼을 때 어쩌면 엘리는 남자애였을지도 모른다고, 엘리는 남자애인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한 게 전부입니다. 또, 사람이 어느 선까지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주제 면에서 오스카르가 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소년과 사랑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제가 이 두 연인이 가는 길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뻔한 장애는 전부 다 치워버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는 점은 남겨두었다고요. 그런 점에서 다분히 단순한 이야기지요.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인용한 걸 보세요. 저는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많은 동성애자 분들이 이 이야기에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뿌듯해집니다. 




8. 오스카르에게 엘리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사랑해줄 수 있는, 그래서 자신도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엘리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 저주를 뒤집어쓴 피해자로 인식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엘리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은 그저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피해를 입는, 흡혈의 대상이 되는 개인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죠. 이들의 존재를 통해 당신은 어떤 사회적 현실을 빗댄 것은 아닌가요? 이를테면 영국 저널리스트의 말을 빌어 “전형적인 ‘괴물’을 찾고 있는 겁니다. 용의자의 생김새와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십시오. 그는 ‘괴물’, 모든 동화에서 볼 수 있는 골수까지 철저한 악(惡)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놈을 잡을 때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주장하고 싶어하죠.”라고 한 부분처럼 말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에 대한 이야기일까, 라고 상상해봤거든요.

저는 소설에서 상징은 쓰지 않아요. 전무하다시피 하죠. 하지만 대비 효과에 대해선 꽤 신경 쓰는 편인데, 그게 때로 상징으로 오해받는 것 같아요. 가령 한 편에 엘리가, 다른 한 편에 1980년대의 스웨덴 사회가 있는 게 대비라고 할 수 있죠. 그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이 저는 재미있습니다.  

9. <렛 미 인>은 상처 입은 영혼들에 대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해도 될 만큼 모든 주인공들이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스카르, 엘리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을 배회하는 다소 불량한 청소년들(톰미, 욘느), 그들의 서툰 부모들, 그런 가정도 이루지 못한 채 외곽으로 밀려난 이들까지(하칸, 라케, 비르기니아). 당신이 바라보는 1980년대 초 스웨덴의 상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게 전반적인 상황인 것인지, 블라케베리로 대표되는 어떤 공간에서만 일어났던 특수한 상황인지 알고 싶군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특정 시기에 발행된 신문 기사를 읽는 것과, 블라케베리를 산책하는 것말고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해선 전혀 조사를 안 했습니다. 그냥 제가 기억하는 것을 끌어다 썼기 때문에, 그것이 스웨덴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블라케베리보다 살기 험한 교외지역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1980년대 초반, 블라케베리는 스톡홀름에서 마약밀매가 가장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10. 특히나 호칸은 이와 같은 비통한 상황을 통째로 짊어지고 사라진 비극적 인물입니다. 아동성애자로 지탄 받으면서도 (이건 당연히 지탄받아야겠지만…) 사랑을 위해 살인을 하고, 염산을 뒤집어쓰길 마다하지도 않고요. 얼굴이 다 망가진 상황에서도 감옥에 갇혀 플라톤이나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구석도 있고…… 여러모로 고전적인 인물로 보입니다. 호칸이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렛 미 인> 초고에서 호칸은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 같은 캐릭터였어요. 권력과 돈에 미쳐 물불 가리지 않는 사디스트였죠. 너무나 조악한 설정이라 그에 대한 글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했어요.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야 그를 아동성애자로 설정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게, 그 덕에 그를 사랑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인물로 묘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글을 쓸 때 작가는 모든 캐릭터에대해, 심지어 괴물이라고 해도 그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최소한 동정심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 당신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켜준 출판사의 고마우신 분은 톰미를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톰미에게 특별한 모델이 있는지? 그리고 톰미는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와, 그거 놀라운데요. 저에게 톰미는 그냥 이야기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능적 역할이었는데요. 물론, 톰미 역시 제 능력껏 진실되게 묘사하려고 노력한 건 맞지만, 그래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라니…… 으흠, 감사합니다. 또, 맞아요, 톰미 또래에 이름도 톰미란 남자애가 제 옆집에 살았어요. 소설 속의 톰미가 앞으로 잘 버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엔 그러진 못할 것 같아요. 저의 소설적 세계관에서 볼 때 그는 그 사건 이후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떠돌 것 같은데요.


12. 뱀파이어 물도 읽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호러 장르의 대단한 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누구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유년 시절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나 작가, 혹은 현재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가와 작품 등 당신이 읽고 느낀 것들 중에 가장 애정을 느끼는 것들이 궁금하군요. (팬으로써 느끼는 감정과, 작가로써 느끼는 감상이 다를 것 같기도 하고요.)

가장 좋아하는 호러 작가는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입니다. 그가 <아라바트>(Arabat, 바커의 2002년 청소년 판타지 소설로 총 네 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젝트 이후 <Mr. B Gone> ([아라밧] 이후 바커가 다시 성인물로 돌아와 발표한 2007년도 소설)으로 활동을 재개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전 <아라바트>는 전혀 재미가 없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스티븐 킹의 작품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그러니 어느 정도 영향도 받았겠죠? 요새는 그의 글 자체보다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제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줍니다. 헛수작 같은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 태도(no-nonsense attitude)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사실 요새는 호러소설을 많이 읽지 못해서…… 또 좋아하는 작가로는 훌리오 코르타사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셀마 라게를뢰프, 사무엘 베케트,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도 좋아요.  



13. 첫 소설인 <렛 미 인>이 출간될 당시에는 두번째 소설 <언데드 다루는 법>을 쓰고 계셨는데요. 장르 팬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TV 방송을 위한 코미디를 써왔는데, 당신은 주로 어떤 농담들을 써먹는 편이었나요? 방송을 위한 극본과 소설,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은 당연히 모두 다르겠지만 당신이 일관되게 신경 쓰는 부분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궁금하네요.

하도 오랫동안 코미디를 써서 그런지 그때의 버릇이 어떤 식으로든 제 이야기에 끼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주 자제력을 발휘해 지나치게 코미디적으로 웃긴 발상이나 문장은 버립니다.  

14. 오스카르가 겪는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 딱히 학원폭력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시대나 가정사에 따라 겪게 된 상처까지 연약한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소설의 굉장히 주요한 요소입니다. 상당부분 당신의 유년 경험과 일치한다고 들었는데, 그 일들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나요.

아뇨. 그 인터뷰 기사 중에서 이 말도 했는데, 한국어로 번역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 바로 다음에 이런 말이 나와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소설과는) 다른 식으로 일어났다.” 이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15. <렛 미 인> 이후 당신은 <인간 항구>를 통해 스웨덴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곧 번역되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당신은 독특한 이력으로 작가로 데뷔했고 장르적 성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수상 과정을 통해 작가로서 인정받은 셈인데,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궁금하군요.

<인간 항구>는 불가해한 사건으로 실종된 딸을 둔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몇 년이 지나 딸이 실종됐던 섬으로 다시 간 남자는 딸의 존재를 감지하게 됩니다. 또 청년 시절의 자신의 유령이 그의 주변에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제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호평부터 수상에 대해 저는 아직도 꽤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몇 년이나 ‘작가’가 되고자 노력하다 포기해버리고 『렛 미 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말이에요.

16. 할리우드에서도 <렛 미 인>을 영화화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스웨덴 판 영화가 감성적인 면에 집중한 근사한 작품이었던 반면, 헐리웃 판의 경우 소설의 다른 부분을 참고하여, 즉 소설에만 집중하여 다시 영화화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 느낌은 왜 그런 짓을? 이었지만 어쩌면 상당히 풍부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네요.) 원작자로서의 기대감이나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흠, 걱정하는 거야 모든 작가들의 사정이죠. '그 작자들이 죄다 망쳐 놓을 거야' 란 식으로. 하지만 전 걱정 안 해요. 우선 감독인 매트 리브즈를 신뢰하고요. 스웨덴의 영화도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만 큰 화면으로 비르기니아가 자기 피를 빨아먹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기분 참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할리우드에서 스웨덴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게 아니라 원작 소설을 다시 각색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원작의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요.

17. 한국어판 서문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군요. 당신이 고른 지명들 (특히 포항, 군산, 여수 등)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통해서……? [장화, 홍련] [거울 속으로] [여고괴담 : 여우계단] 등에 대한 감상도 밝혔습니다. 최근에 새롭게 본 한국산 호러 영화도 있습니까? (나는 <렛 미 인>을 읽으면서 어쩐지 [살인의 추억] [박쥐] 같은 영화들이 겹쳐보였습니다. [박쥐]는 <렛 미 인>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상당히 다른 길을 간 듯한 느낌도 주는 뱀파이어 영화이고, [살인의 추억]은 <렛 미 인>의 후반부를 읽는 내내 떠오르는 영화였습니다.)

죄송해요, 말씀하신 영화는 다 못 본 것들이네요. 그리고 맞아요, 그래서 또 죄송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한국을 검색해봤어요. 서문을 쓰다보니 한국의 도시 이름들을 알아야겠더라고요. 아쉽지만, 한국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장화, 홍련>은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영화랍니다. 

18. 현재 집필 중인 소설에 대해 소개해 줄 수 있다면? 어떤 장르의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아마 당신의 소설을 읽은 한국의 팬이라면 다들 궁금해 할 것 같네요.

<리틀 스타 Little Star>라는 소설인데 아기 때부터 음정을 완벽하게 맞추어 부르는 소녀가 주인공이에요. 그 소녀가 소설의 큰 축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축으로 지극히 평범한 소녀가 등장해요. 둘 모두 꽤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십대에 접어들 무렵 서로를 알게 되면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공포 장르지만 노래를 부르는 아기라는 설정을 빼면 초현실적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말은 아주 무시무시해요. 

19. 당신은 오스카르가 엘리의 새로운 조력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의도한 엔딩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별도의 짧은 에필로그를 써놓았다고도 했는데요, 언제쯤 우리가 그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쓰는 소설을 끝낸 다음에  지난 몇 년 동안 쓴 단편들과 이런저런 잡문들을 모은 모음집을 낼 건데, 그때 그 에필로그도 함께 실을 생각입니다. 제목은 ‘Let The Old Dreams Die(묵은 꿈들은 흘려보내라, 모리시의 'Let The Right One In'의 가사)’인데, 단편모음집의 제목이기도 해요. 

20. 작가로서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윽!  <언데드 다루는 법 Handling the undead>에서 제 딴엔 농담이라고 쓴 말로 대답을 대신해도 될까요. "개가 왜 자기 불알을 핥는 줄 알아? 핥을 수 있으니까." 전 이렇다 할 동기부여가 되어서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글을 쓸 수 있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된 거죠.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가득 차 있어서 자꾸 밖으로 나오려고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21. 그리고 한국의 팬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위키피디아를 빌려 한국에 대해 아는 척해서 죄송해요. 몇 편 안 되는 공포영화 말고도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면 좋을 텐데. 낯설고 아름다운 한국말을 읽을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 한국말을 보면 늘 마법의 주문을 보는 기분이 들거든요. 한국말은 못 하니까 이런 말이라도 드릴게요. ‘제 이야기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로 꼭 보답할게요.’


스미스의 해체 후 얼마 안 되어 녹음/발매 된 모리시의 솔로데뷔 앨범은 여전히 그의 가장 뛰어난 정규앨범으로 남아있다. 이 비참의 대명사가 얼마나 동료를 좋아하는지 데이빗 헤밍웨이가 입증해 보일 것이다.

모리시가 스티븐 스트릿과 듀러티 컬럼의 비니 라일리와 함께 녹음한, 비바 헤이트는 모리시가 스미스의 해체로 비롯된 들뜬 분위기에 안주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보여준 앨범이었다. 물론 그렇게 단언하기엔 앨범이 다소 유행과는 동떨어진 면이 있긴 하지만 – 심지어 모리시조차 앨범을 “뜻했던 바대로 얻어낸 결과라기보다는 어쩌다 일어난 일에 가깝다”고 표현하였다 – 비바 헤이트의 많은 수록 곡은 여전히 당신을 흥분시킬 만큼 좋은 음악이다. 처음 듣는 이들을 위해 제목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것은 통쾌할 정도로 염세적인 제목이다. 모리시의 말에 따르면, 비바 헤이트는 원래 뒤집힌 교육이라는 가제를 달고 있었으나, 최종 제목인 비바 헤이트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증오의 감정은 넘쳐나고 사랑의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죠. 증오는 세상이 굴러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광란적이고 집요한 비니 라일리의 기타 사운드로 포문을 연 비바 헤이트는 불친절하고 급작스럽게 끝을 맺는다, 마치 길로틴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너와 그는 연인이었던 거야?/그랬다면 그렇다고 말해/시트 위/텐트 안에서/너의 텐트가 활짝 열린 채.”라는 다소 천박한 가사가 모리시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나는 첫번째 트랙, “알사스인 사촌”은 앨범의 가장 뛰어난 수록 곡 중 하나이다. 마지막 곡인 “사형대의 마가렛”의 경우, 대처를 자극시키기 위해 던진 다음과 같은 가사 덕분에 모리시는 경찰에 취조 당하기까지 했다. “언제 죽을 거야? 언제나 돼야 죽을 거냐구?”

또 다른 측면에서 비바 헤이트는, 아역스타로 인생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버린 이의 운명에 대한 고찰한다든가 (“별 볼일 없는 녀석, 이젠 또 뭐야?”), “폐쇄되었어야만 하는 한 해안마을”에 핵폭탄이 떨어지길 빈다든가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아”) 혹은 (비록 끔찍이도 재미없는 풍자이긴 했지만) 전통의상을 온몸에 걸치고 다니는 벵골인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든가 (“승강장의 벵골인”) 하는 등의 모리시의 영국성(性)에 대한 집착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앨범의 가장 중요한 곡이자, 기묘하게 늘어지며 단조로운 “늦은 밤, 우수에 찬 거리”는 1972년 무렵의 어린 모리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3곡 중 첫 번째 곡이다. (나머지 곡은 “가족을 해체해”와 “스웨이드헤드”) 라일리의 부드러운 기타 연주 위로 모리시가 이렇게 읊조린다. “난 다른 이들의 즐거운 시간에 몰래 손 댄 적 없어.”

“그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습니다.”. 라일리가 그 곡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고 다들 별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만은 제스터 게임을 하지 않았죠, 내 장담 합니다.“

“가족을 해체해”에서, 모리시는 친구들과 헤어지던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린다. (“행운을 빌어줘, 친구. 안녕.”) 이것은 모리시가 스미스 시기에도 또 그 이후에도 반복해야 했던 일이기도 하다: 비바 헤이트의 제작이 끝나고, 그는 다시는 라일리나 스트릿과 함께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데이빗 헤밍웨이와 비니 라일리의 대화.

어떻게 비바 헤이트의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스티븐 스트릿이 듀러티 컬럼의 앨범 두 장을 프로듀스 했었습니다. 그는 모즈(모리시)를 위한 코드와 곡 구성을 짜고 있었죠. 그들은 몇 개의 러프한 데모를 만든 상태였는데, 건반과 샘플 스트링, 기타를 연주할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그래서 스티븐이 나에게 제안을 했죠. 모리시는 꽤 맘에 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어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작업에 들어갔을 때, 내가 모든 음악을 다시 쓰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스트릿이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는 건 아닙니다 – 그는 뛰어난 프로듀서예요 – 하지만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곡을 다시 썼어요. 모든 작업은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나는 그들을 매우, 매우 좋아해요.

이전에도 모리시와 친분이 있었어요?

몇 번 그를 보긴 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혼자였어요. 조이 디비전의 공연을 보러 오거나 했었죠. 혼자 있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모리시의 여성 친구이자, 맨체스터의 펑크 밴드인 루더스 (Ludus)의] 린더와는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 전까진 인사도 나눠본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스미스의 팬이었습니까?

“순이는 지금 어때”를 듣자마자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죠. 정말 뛰어난 곡입니다. 엄청난 기타 리프와 보컬을 담고 있어요. 멋진 곡이죠.

모리시의 다른 음악을 들어보았나요? 최근의 곡이라던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바 헤이트 이후의 곡은 별로 듣지 않았어요. “국제적 바람둥이들의 최후”는 들어보았습니다만…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로커빌리 스타일의 음악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거든요. 관심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꽤 불행한 일이죠. 난 내가 듣는 음악에 대해 세밀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클래식 음악, 플라멩코, 남아프리카 힙합처럼요. 내가 절실히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있죠.

모리시와 작업하는 건 어땠나요?

즐거웠어요. 음악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구요. 반주의 음량을 낮추면 어느 부분이 절(verse)이고 어느 부분이 코러스인지 알 수 없게 되는데요, 그는 코러스를 불러야 하는 부분에서 절을 불렀고 절을 불러야 하는 부분에서 코러스를 불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줬어요. 그가 과연 어떤 음으로 노래를 부를 것인지 항상 기대할 수 밖에 없었죠.

함께 제스터 게임을 하거나 음식 빨리 먹기 게임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모리시의 냉소적인 유머감각 덕분에 우린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리시는 애정을 담아서 날 놀려먹곤 했어요. 매우 친절하고 재밌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그와 작업할 마음이 있습니까?

비바 헤이트 이후에도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받았었죠. 하지만 난 그걸로 내 할 바를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내 작업을 하는 중이기도 했구요. 또한 나는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일을 하는데 능하지도 않고, 관심이 많지도 않아요. 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거든요. 나는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모리시와의 작업이 당신에게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까?

나 자신의 음악을 다루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비바 헤이트를 만들 때는 내 접근법을 바꿀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나의 방식을 취했습니다. fin.

 

 이 인터뷰에선 좋은 얘기만 하는 비니지만, 모리시의 비공식 다큐멘터리, [주얼 인 더 크라운]에서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한다. 그는 모리시와 스티븐 스트릿이 비바 헤이트의 작곡 크레딧에 자신을 이름을 안 올려준 것이 영 섭섭한 모양이다. 비바 헤이트의 전곡은 모리시/스트릿으로 크레딧이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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